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1898년 4월 1일,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는 [[뉴욕시]]에서 [[러시아]] 출신의 유대계 이민자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보리스 사이디스(Boris Sidis/1867~1923)는 1887년 정치적 박해를 받아 러시아령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보리스는 불과 몇 개월만에 [[영어]]를 할 수 있었고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해 조기 졸업했다. 이후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로서 하버드에서 여러가지 책과 논문을 쓰며 심리학을 가르쳤다. 어머니인 세라 맨들바움 사이디스(Sarah Mandelbaum Sidis/1874~1959)는 1889년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 1897년 [[보스턴 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사이디스가 태어나면서 양육을 위해 의사직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사이디스의 부모는 사이디스에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교육과정을 밟게 하는 대신에 아이만을 위한 독자적인 방식으로 조숙하게 길러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사이디스에게 체벌을 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공감하며 아이가 학문 자체를 사랑하게 만들려는 형태로 영재교육을 시작했다. 이러한 형식의 교육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었던 교육 방식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교육이 되었다.[* 그러나 영재에 대한 의무교육이 무조건 좋다고 볼 수는 없다. 호주의 [[테렌스 타오]]가 그러한 예로, 그는 초등학교를 포함한 모든 의무교육을 생략하고 독자적인 커리큘럼으로 수학했으며 현재는 세계적인 석학이 되었다. 의무교육 생략은 인간의 성격 발달에 있어 매개변수 중 하나에 불과하며 천재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는 긍정성과 인간관계 역할놀이의 부재(평범한 사회와의 교류 난항)라는 부정성을 같이 갖고 있는 수단으로 반드시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테렌스 타오 본인은 의무교육의 필요성을 긍정했다.영재교육 과정에서 배우지 못한 인간 관계 면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며 이는 본인이 직접 답한 내용이다.] 사이디스는 생후 6개월 때 처음으로 말할 수 있었고 18개월 때 [[뉴욕 타임즈]]를 읽었다. 세 살 때 장난감을 주문하기 위해 [[타자기]]로 장난감 회사에 편지를 쓰고 네 살 때는 [[라틴어]]를 배워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를 낭독했다. 6살 때 브루클린에 있는 통합 학교를 7개월 만에 졸업했다. 그는 하버드대 심리학 박사이자 의무박사인 아버지에게 수학, 천문학, 해부학 등을 배웠다. 사이디스는 8살 때까지 독학으로 9가지 언어(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히브리어]], [[터키어]], [[아르메니아어]], 영어)를 익혔다. 그리고 스스로 벤더굿(Vendergood)이라는 이름의 [[인공어]]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사이디스가 한 일은 다음과 같다. * 생후 6개월 때 숟가락을 사용하여 스스로 식사를 하려고 했다. 그리고 2개월 뒤에는 성공했다. * 생후 6개월에 문(Door)이라고 말했다. 2개월 후, 어머니 사라를 향해 문, 사람들, 움직이는 것들이 좋다고 말했다. * 생후 7개월에 [[달]]을 가리키며 "달"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달을 갖고 싶어했다. * 1살 때 철자법을 익혔다. * 3살 때 타이핑을 시작했다. [[타자기]]에 접근 할 수 있도록 높은 의자를 사용했다. 처음 입력한 것은 장난감 회사에 장난감 주문하는 편지였다. * 4살 때 아버지의 생일 선물로 [[라틴어]]로 된 [[갈리아 전기]]를 낭독했다. * 4살 때 [[고대 그리스어]]로 된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원서로 읽었다. * 6살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공부했다. * 6살 때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히브리어]]를 습득. 또한 [[터키어]]와 [[아르메니아어]]를 익혔다. * 6살 때 어떤 날짜를 지정하면 요일을 계산하고 맞출 수 있었다. * 6살 때 의과대학의 [[해부학]] 교과서인 '그레이 해부학'를 공부했다. * 6살에 [[브루클린]]에 있는 통합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너무 이해도가 빨랐기 때문에, 3일 만에 3학년으로 진급, 7개월 만에 졸업했다. * 8세 때 9개 국어를 구사했다. * 8세 때 스스로 자신만의 인공언어인 벤더굿을 만들었다. * 8세 때 하버드 대학 교수 에드워드 버밀리예 헌팅턴(Edward Vermilye Huntington, 1874 ~ 1952)이 쓴 수학 교과서를 교정했다. * 4세에서 8세 사이에 4권의 문서를 집필했다. 해부학과 천문학 책도 썼지만, 분실되고 현존하지 않는다. * 10세 때 하버드 대학의 논리학 교수가 쓴 논문의 단락을 교정했다. * 11세 때 고등수학과 천문학을 익혔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나이에 여러가지 언어를 가르친 것은 결과적으로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하였다. 군대나 외교 첩보 등의 공무원이 되거나, 민간에서 [[국제도시]]나 관광지에서 소매업을 하는 게 아닌 이상 혹은 유창하게 읽고 '''글도 유려하게 잘 쓸''' 능력까지 되지 않은 이상 다국어는 별로 쓸모가 없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여러 언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에 대한 환상과 과대평가를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한 가지 언어만 사용되는 주로 사회 출신 사람들이 흔하게 착각하는 사실이다. 실상은 외국인들과 교류가 많은 지역 주민들의 경우 머리가 조금 좋은 수준이면 4~10개 정도 언어로 간단한 회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많다. 종종 서구인들이 서아프리카 가나나 나이지리아를 가면 문맹 농민이 프랑스어와 영어, 부족어 5~6개로 말하고 듣기를 할 수 있어서 엄청난 천재를 발견할 줄 아는 경우도 많은데, 지역 사회에서 평균보다 조금 더 똑똑한 수준에 불과하다. [[러시아 혁명]] 이전의 서구인들의 여행기를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점포에서 일하는 여성 상당수는 글을 더듬더듬 읽는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대개 3~4개에서 11개 정도 사이의 언어로 일정 수준 이상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